당분간 비로그인 회원의 글쓰기를 제한합니다.

제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불만이 생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요. 저한테 반박하자고 이글루 회원 가입하는 것도 귀찮은 일일테니 그런 분들을 위해 지금까지는 비로그인도 댓글을 쓸 수 있게 설정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몇몇 비로그인 분들의 격려도 받았고, 반대로 반론 내지는 공격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저질적으로 노는 비로그인들이 늘어서 조금 스트레스가 받네요. 이제까지 저는 제 글에 불만 있는 사람에게 언제든 반론권을 주었지만, 태도가 불량하고 처음부터 시비를 거는 경우에는 같은 수준으로 대응해주었습니다만, 갈수록 인신공격에만 치중하는 사람들이 늘어서 당분간 비로그인 회원의 글쓰기를 차단합니다. 선의의, 혹은 제 글이 못마땅하더라도 최소한 예의는 지켜주셨던 비로그인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몇몇 제 인신공격을 감행하신 분들, 제 글이 못마땅하면 트랙백 걸어서 비판을 하세요. 와서 욕하거나 잘 알지도 못하는 남 과거사의 파편들 몇 개나 들춰내지 마시고. 인생 그렇게 찌질하게 살면 뭐 좋은 일 있습니까?

by udis | 2010/06/29 20:17 | 본격 찌질이 사냥터 | 트랙백 | 덧글(9)

방명록 겸 이 블로그의 운영지침

블로그 연지 두 달이 넘도록 다른 사람들 방명록 하는 걸 보면서 저거 어떻게 하나 궁금했었는데 오늘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저도 방명록을 만들어봅니다.

제가 블로그를 열게 된 원래 취지는 무술의 저변확대를 통해 제가 다니는(운영하지는 않습니다) 도장의 관원을 늘리기 위함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운동 포스팅은 갈수록 뜸해지고 정치인 뒷담화나 까는 블로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

일단 세상이 참 뭐 같습니다. 자칫 우울하고 상실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럴 때의 가장 큰 무기는 웃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을 잃은 사람은 생각이 극단적으로 흐르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그랬던 때가 있었기 때문에 잘 압니다. 저는 평범한 소시민이고 나이 드신 어머니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세상이 뭐 같아도 뛰쳐나가 직접적으로 야이 띠바들아 하고 외칠 용기가 잘 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뒷 감당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래서 입진보라고 불려도 할 말은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저와 같은 사람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가급적 재미있는 포스팅을 계속해서 올릴 생각입니다. 웃으면서 삶의 희망을 잃지 않고 버티다가 그날이 오면... ^^v

제 블로그에 댓글을 남기실 때의 몇 가지 유의사항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으시다면, 이를테면 술이라도 한 잔 사주고 싶다든지, 여동생을 소개시켜 주고 싶다든지, 꼭 이런 거창한 거 아니더라도(죄송    --;) 여기에 남겨주세요.

일단 저는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댓글 삭제는 안 할 생각입니다. 다만, 여기에 해당하는 경우는 삭제합니다.

1. 로그인 안 하고 들어와서 욕만 틱 내뱉고 가는 경우
-> 비로그인이라고 무조건 삭제도 안 하고, 욕했다고 해도 문맥의 흐름상 타당한 욕이라면 삭제하지 않습니다.

2. 로그인을 했다 하더라도 처음부터 인신공격을 시도하는 경우
-> 논쟁이 진행되다가 열받아서 인신공격하는 것은 수용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인신공격하는 경우에는 정도를 판단해서 삭제하거나 아니면 그 사람 블로그에 찾아가 똑같은 분탕질할 작정이니 알아서들 처신하시길

3. 광고성 댓글
-> 상업적인 광고는 무조건 삭제입니다. 이 블로그는 무슨 전문 지식을 올리는 블로그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방문객이 늘어도 상업적으로 이용할 생각 없습니다. 돈 생각하게 되면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장이 상업화할 생각이 없는데 상업 광고 했다간 실시간 삭제입니다.

이 점만 유의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살아나시는 그날까지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조근조근 씹으며 살아갑시다. ^^

by udis | 2010/05/29 21:27 | 트랙백 | 덧글(70)

웃기는 짬뽕들

박정희는 혈서를 썼다 3 - 조갑제 옹의 일갈을 기다리며

라이프 펜님이 조갑제 씨가 쓴 글을 링크해놨는데 거기 이런 링크가 있다. 조갑제 씨 홈페이지에 있는 내용이다.

박정희는 혈서를 쓰고 만군에 갔다

1998년 서울 강남구에 살고 있던 유증선 할아버지는 나이가 87세였지만 상당히 또렷한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그는 박정희와 함께 교사 생활을 했던 분들 중에서는 유일한 생존자이다. 지금까지 박정희 선생에 대한 증언들은 거의 전부가 제자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자연히 과장과 오해, 그리고 미화가 있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동료 교사 유증선의 증언은 객관적이고 좀더 정확할 것이다. 그의 증언을 요약해본다.
 
조갑제 씨가 유증선 씨의 증언을 채집한 이유는 동료교사이니까 '객관적이고 좀 더 정확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우리가 숙직실에서 가까이 지낼 때 박정희 선생은 도무지 말이 없었다. 그러나 할 말은 반드시 하는 사람이었다. 강직한 성품에서 나는 ‘이 사람은 군인이 되어야 할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가 바로 대쪽이었다. 남이 싫어하고 피하는 일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해치우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성격을 갖게 되었는지 신기했다. 한번은 운동장에서 나를 옆에 세워놓고 기계체조를 해 보였다. 그는 가볍게 철봉을 잡더니 ‘大車輪(대차륜)’을 하는 것이었다. 철봉에 매달려 몸을 쉬지 않고 휘휘 돌리는 것이었다. 꼭 철봉에 붙어 있는 것같이 자유자재였다. 공부벌레들만 있다고 하는 대구사범에서 저런 운동을 언제 배웠는지 놀랄 따름이었다.

보다시피 유증선 씨의 증언은 '군인이 되어야 할 사람', '강직', '대쪽', '저런 운동을 언제 배웠는지 놀랄 따름' 등의 단어를 사용해가며 박정희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1938년 5월경이라고 생각된다. 숙직실에서 같이 기거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서로 털어놓을 때였다. 박 선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아무래도 군인이 되어야겠습니다. 제 성격이 군인 기질인데 문제는 일본 육사에 가려니 나이가 많다는 점입니다. 만주군관학교는 덜 엄격하다고 하지만 역시 나이가 걸립니다.”


이 글에서는 박정희가 원래 일본 육사에 가려고 했으나 나이 문제 때문에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한 정황이 잘 드러나 있다.

우리가 연구한 것은 ‘어떻게 하면 만주군관학교 사람들이 환영할 수밖에 없는 행동을 취할 것인가’였다. 내가 문득 생각이 나서 “박 선생,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면 어떨까”라고 했다. 그는 즉각 찬동했다.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바로 옆에 있던 학생 시험 용지를 펴더니 면도칼을 새끼손가락에 갖다 대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설마 했는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내는 것이었다. 박 선생은 핏방울로 시험지에다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이라고 썼다. 그는 이것을 접어서 만주로 보냈다. 그때 편지가 만주까지 도착하는 데는 1주일쯤 걸릴 때였다. 한 보름이 지났을까, 누군가가 만주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박 선생 이야기가 실렸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보다시피 혈서를 쓴 계기와 만주의 신문에 그 이야기가 실린 사연도 공개되어 있다. 그러면 조갑제 씨는 이런 이야기를 왜 꺼냈을까? 그것은 항간에 떠도는 박정희 입대에 관련된 '잘못된' 속설, 즉 교장하고 마음이 안 맞아서 고민하다가 학교 선생질 못해먹겠다고 군에 간 게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면 신화는 어떻게 탄생했던가. 대구사범 동기생으로서 그때 문경과 가까운 상주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권상하(전 대통령 정보비서관)의 증언.


<1939년 10월 아니면 11월에 박정희가 보따리를 싸들고 나를 찾아 왔다. 머리를 길렀다고 질책하는 視學(시학·장학사) 및 교장과 싸운 뒤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길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만주로 가서 대구사범 교련주임 시절에 자신을 총애해 주었던 아리카와 대좌를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집에서 하룻밤을 잔 뒤 열차편으로 떠나는 정희를 전송했다>


박정희는 권상하 이외에도 몇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1939년 10월에 만주군관학교 입학시험을 치르고 학교로 돌아와서 계속해서 근무하다가 다음해 3월에 만주로 떠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박정희가 아리마 교장을 패주었다느니 술상을 뒤엎었다느니 싸우고 갔다느니 하는 말들은 뒷받침되지 않고 있다. 더욱 이상한 것은 1976년 2월 17일 대통령 공보비서관 鮮于煉(선우연)이 작성하여 박 대통령의 결재까지 받아둔 ‘대통령 이력서’의 내용이다. 이 자료는 박 대통령이 읽고서 교정을 본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자료는 박정희가 만주로 떠난 동기에 대해서 ‘道(도) 장학사가 나이가 많은 아리마 교장에게 불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고 혐오를 느낀 것이 교사직 사임 원인의 하나이다’고 했다. 아리마 교장이 여기서는 동정의 대상으로 둔갑하고 있다. 박정희는 그러면 왜 이런 신화가 만들어질 소지가 있는 말을 했을까. 혹시 자신의 만주行(행)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스스로 꾸며낸 말이 아닐까. 박정희보다 네 살 위인 누님 박재희는 생전에 이런 증언을 남겼다.


“동생이 가끔 내 집에 와서는 ‘죽어도 선생질 더 못해 먹겠다’고 말하곤 했어요. 어느 날 밤늦게 동생이 또 저를 찾아왔습니다. 만주군관학교로 가기로 결심했다고 하는 거예요. 아버님과 상희 형에게 교사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호통만 들었다면서 만주로 갈 수 있도록 노자를 달라고 했습니다. 며칠 뒤에 돈을 받아서는 본가에 들르지도 않고서 만주로 갔지요.”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장남 재석에 따르면 박상희는 동생이 안정되고 대우받는 교사직을 팽개치고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여러 번 경찰서와 감옥에 끌려간 적이 있는 항일투사 박상희는 동생의 변절을 허용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박정희는 이러한 비난에 대한 일종의 변명거리로서 일본인 교장 및 시학과의 충돌설을 꾸며내거나 과장하여 퍼뜨린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박정희의 형인 항일투사 박상희가 박정희의 군 입대를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주변에 일본인 교장과의 충돌설을 꾸며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조갑제는 왜 박정희에게 오히려 불리할 수도 있는 이런 이야기를 굳이 발굴해 냈을까?

박정희 선생이 혈서를 써서 만주군관학교에 입학 시험을 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동료 교사 유증선의 증언은 지금까지의 통설과 상반된다. 통설은 박정희가 교장과 싸우고 교사직을 그만둔 뒤 만주로 갔다는 것이다. 이런 통설은 박정희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 많이 유포되었다. 이 통설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박정희가 ‘독립운동을 할 힘을 기르기 위해서 滿軍(만주군) 장교가 되려고 했다’는 신화로 발전하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혈서說(설)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박정희는 대구사범 재학 때나 문경 교사 시절에 늘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키워 가고 있었다. 교장과의 불화 때문에 충동적으로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오랜 집념의 실천이었다.


즉 박정희는 순간의 울화 때문에 선생질을 때려치우고 군대에 입대한 충동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던 점이다. 사실 순간적으로 화딱지 나서 직장 때려치우고 군대 갔다가 어영부영 하다보니 어느새 쿠데타를 일으키고 대통령이 되었다라고 하면 좀 영웅이라고 부르기엔 그렇지 않나? 이를테면 가난하게 태어나 고생 끝에 자수성가한 사람에게 어떻게 노력하셨어요? 라고 인터뷰를 했더니, 아, 그게, 인생이 하도 안 풀리니까 화딱지 나서 술 퍼마시고 남은 돈으로 에라 모르겠다 하고 로또를 샀는데 그게 맞아서...(긁적긁적), 이러면 폼 안 나잖아. --; 마찬가지로 박정희는 오랜 세월 군인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있었고, 학교 선생을 하는 동안에도 신체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가 끝내 늦은 나이에 군에 입대했다. 나이가 많은 것이 걸림돌이었는데 혈서로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 편이 더 폼 나는 건 사실이다. 다만 문제는 그렇다면 항간에 퍼진 박정희가 독립운동을 위해 힘을 기르려고 군대에 갔다는 이야기는 도시 괴담이 되어버리고 박정희의 이미지가 확신적인 친일파로 굳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조갑제는 별로 거기에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조갑제도 나름 확신범이기 때문이다.

친일보다 더 나쁜 건 친북 - by 조갑제


親北(親金正日 정권을 뜻함)이 親日보다 더 악질적인 이유는 이렇다.


1. 親北은 자발적인 데 비해 親日은 거의가 강압에 의한 것이든지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우리가 비판하고 조사해야 하며 기록해야 할 親日은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한정해야 한다.


2. 대부분의 親日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잘못된 정보하에서 이뤄졌으나 親北 활동은 북한정권의 실패와 죄악상이 백일하에 드러나 있는데도 자행되고 있다.


3. 親日한 사람들중에선 일본의 선진 기술-군사, 교육, 과학, 기업 등-을 배워 대한민국 건국 이후 조국을 위해 썼던 이들이 많다. 親北하는 이들은 시대착오적인 논리와 증오심을 배워 가지고 주로 대한민국과 헌법과 자유를 파괴하는 데 쓰고 있다.


4. 親日한 사람들은 거의가 사망하여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는다. 親北인사들은 지금 득세하여 한국 사회에 구체적인 위해를 가하고 있다.


5. 親日한 사람들중 다수는 미안한 마음이 있어 親日하지 않은 동족들을 괴롭히지 않았으나 親北세력은 스스로 진보를 사칭하면서 親北하지 않은 세력을 守舊반동으로 몰고 위협까지 가한다.


6. 일제시대의 親日은 민족에 대한 반역이었지만 국가에 대한 반역은 아니었으나(당시엔 국가가 없었다) 親北은 민족과 국가에 대한 동시 반역이다.


7. 친일한 사람들 중 다수는 대한민국 건국 후 나라에 충성하여 친일의 과오를 상당히 벗었으나 親北인사들은 북한정권의 실패와 죄상이 드러난 이후에도 반성 없이 대한민국 흘뜯기를 계속하고 있다.


8. 친북세력은 친일문제를 흉기로 삼아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민족반역 김정일 정권을 드높이려고 한다.


9. 親北 反민족 행위자 색출법을 만들어 親김정일 인사들을 공직에서 추방하는 것이 시급하다. 서독의 브란트 수상은 일종의 햇볕정책인 동방정책을 추진하면서도 체제파괴적 언동을 한 사람들을 조사하여 수백명을 공직임명에서 배제했었다.


10. 따라서 친일보다 더 나쁜 건 親北이다.


즉 조갑제는 분명히 '친북 > 친일'이라는 확고한 가치판단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박정희가 설사 친일 했어도 국가 경제 발전시키고 반북을 확실히 했기 때문에 과거의 친일행각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조갑제씨가 그렇게 판단하는 것은 본인의 가치관이니 인정한다. 오히려 그 떳떳한 자세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문제는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만주신문 기사 사본을 공개하니까 나타난 여타 떨거지 우파들의 반응이다.

박정희 考, 박정희 혈서 증거자료라는 것을 보고

박정희 考, 만주 신경군관학교 예과 생도 모집 공고의 건

그리고,

이젠 대놓고 친일파 인증 --;

이 글에 소개된 사진을 보자.

민족문제연구소는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인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하고 정략적인 목적에 의한 친일조작, 역사왜곡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을 근거 없이 음해하고 있습니다.


이거 얼마나 웃기는 짓거리인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조작, 역사왜곡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음해하려 했다면 그 근거는 조갑제 씨가 제공한 것이다. 한 쪽에서는 비록 친일파이긴 해도 더 나쁜 친북파를 몰아낸 영웅이라고 미화하면서 영웅적인 풍모를 보여주는 근거를 대고, 다른 쪽에서는 그게 근거 없는 음해란다. 그게 그렇게 문제라면 민족문제연구소에 뭐라고 하기 전에 조갑제에게 찾아가서 왜 그런 '근거 없는 음해'를 전기랍시고 썼냐고 따져야 했을 것 아닌가? 조갑제씨는 그 내용을 책에도 쓰고 자기 홈페이지에도 올렸는데 그때는 왜 박정희를 친일파로 묘사했느냐고 따진 사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민족문제연구소에서 같은 내용을 발표했더니만 이제는 왜 친일파로 모느냐고 연구소를 해체하겠단다. 아, 혹시 이 사람들은 '박정희는 친일파다'라고 문장으로 정확하게 선언해 줘야만 친일파인줄 알고, 정황상 이런 내용을 쓰면 친일파로 몰리는 건 아닌가 하는 판단을 못내리는 무뇌충들인가? 그렇다면 그런 행동은 조금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 정도 지적 수준으로 나라를 위한다고 나서는 건 오히려 민폐니까 나라 걱정은 똑똑한 젊은이들한테 맡기고 본인들은 종묘 공원에서 장기나 두시는 게 어떨는지. 가끔 심심하면 박카스 아줌마들이랑 노닥거리고.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데 애국질이 이렇게 손발이 안 맞으면 어떡하나. 웃기는 짬뽕같은 우파들 때문에 참으로 걱정이다.

by udis | 2009/11/07 18:46 | 담벼락에 욕하기 | 트랙백 | 덧글(3)

남에게는 엄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사람

정운찬 '731부대? 저, 항일..독립군인가요?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정 총리에게 "어제 오늘 서울대 총장을 지낸 석학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됐는데, 아는 것이 무엇이냐"고 몰아붙이자 정 총리는 "서울대 총장을 했다고 남북 정상회담설까지 다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총리 된지가 얼마 안됐다"고 불쾌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다른 분들이 이미 731떡밥으로 많은 좋은 글들을 썼기 때문에 굳이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게다가 갑자기 그런 질문 받으면 순간적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말실수 가지고 늘어지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ㅋㅋㅋ

다만 나는 저 대목이 몹시 마음에 걸린다. 물론 서울대 총장이 남북정상회담설까지 알아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정운찬 총리는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사교육비 막아보자고 논술 3불 정책을 추진했는데 거기에 제일 앞장 서서 딴지 건 사람이 정운찬 당시 서울대 총장이었다. 우수한 학생 뽑겠다는데 국가가 웬 간섭이냐라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그러면서 본고사형 문제 출제 금지라는 원칙을 어기고 대단히 높은 난이도의 논술문제를 출제했다. 서울대가 치고 나가니까 다른 학교들도 경쟁이 붙어서 그무렵 논술고사는 어지간한 대학생도 손대지 못할 난이도의 문제가 쏟아져나왔다. 그것 때문에 학과공부로도 충분히 힘든 학생들이 논술학원 다니면서 프랑스 철학자들의 주장까지 외워야 하는 기현상이 생겼다.

고등학생에게는 그런 턱없는 지식을 요구해놓고 자기는 국무총리가 됐으면서 저런 질문 좀 했다고 불쾌해 해? 참 뻔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뻔뻔함은 이 정부의 트랜드지.

 전형적인 남에게는 엄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사람이다. 공자는 이런 사람을 소인배라 불렀다. 당시 그 어려운 문제 풀다 자포자기한 수많은 학생들은 정총리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by udis | 2009/11/06 18:34 | 담벼락에 욕하기 | 트랙백(1) | 덧글(9)

생각해보니 이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군

박정희考...박정희 혈서 증거자료라는 것을 보고

또한 몇가지 문제가 더 보이고 있는데, 이 신문을 보면 "(전략)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경군관학교 제1기 모집시에는 만계(滿系)만 모집했으며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이란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더욱이 조선계는 만주계에 속해 일본계 모집요강과는 해당사항이 없으며,  일본계가 신경군관학교에 최초에 입학한 것은 1940년 1월이다. (滿洲國軍刊行委員會, 滿洲國軍, 蘭星會, 1970, 619쪽). 그런 고로 이 신문기사는 사실과는 전혀 다르다.

처음에 저 글을 읽고 아예 신문기사의 신빙성까지 무시해버리는 무명씨의 놀라울 정도의 뻔뻔함에 이 글을 썼다.

이름은 없지만 명불허전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명씨의 수법이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직접 겪은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보니 황당했을 뿐이다.

일본우익들은 난징대학살을 없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국측의 사료에 대해서는 신빙성이 없다고 일축해버린다. 그런데 당시 일본군이 남경에 주둔했을 때 하급 장교 둘이서 미야모토 무사시 흉내낸답시고 백인참 내기를 한 사건이 있었다. 무사시처럼 전국의 강호들과 진검승부를 겨룬 것은 아니고 포로들 묶어놓고 목을 벤 무척 비열한 짓거리였는데 한놈은 125명인가 베고 또 한 놈은126명인가 베었는데 아마 더 목을 자를 포로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냥 무승부로 끝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내기에 대해서 당시의 일본 신문에서 대문짝만하게 보도를 했다.

일본 우익들이 중국측 사료만 들이대면 믿을 수 없다고 지롤들을 해대니까 결국에는 일본신문에 난 이 백인참 내기 사건을 예로 들어 이래도 난징대학살을 부인하겠느냐고 공격했다. 그러자 일본 우익들의 반응은?

지금 무명씨 반응하고 똑같다. 그런 이름의 장교가 없었다는 둥, 신문기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둥, 날조라는 둥, 윤계상이 좌파를 꽉 막힌 사람들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우익이라고 하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로 알고 있을 거다.

백인참 사건과 일본 우익들의 반응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은 이 영화를 참조하길 바란다. 스쿠니

뿌리가 그쪽이니 닮은 짓거리 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만,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추하게 생각한다는 것만 알아주신다면 고맙겠다.

by udis | 2009/11/06 16:30 | 본격 찌질이 사냥터 | 트랙백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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