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항아리에 좀 들어가야 쓰겄소!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 측천무후는 당고종의 말단 후궁 출신이었으나 미인계를 바탕으로 한 갖은 모략으로 권력을 움켜잡고 급기야 고종의 사후 스스로 황제의 위에 올라 국호를 '주'로 고치고 15년간 통치한다. 황후가 섭정을 하는 것과 직접 황제가 되어 국체를 바꾸는 것은 완전히 성격이 다른 문제이다. 측천무후 역시 이 점을 잘 알았기 때문에 반대파에 대한 혹독한 탄압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비판의 기미를 보이는 사람에게는 온갖 누명으로 죄를 뒤집어 씌우고 갖은 고문으로 신체를 망가뜨리고 결국에는 일가를 도륙했다. 이 서슬퍼런 살아 있는 권력에 감히 도전하려는 옛 당나라 관료들은 씨가 말랐고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에 하늘에 감사하고 살았다.

이때 측천무후의 수족이 되어 누명을 씌우고 고문을 자행했던 자들을 '혹리(잔혹한 관리)'라 부른다. 이들의 잔혹함은 영상 자료 없이 기록된 역사서만 보아도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그런데 측천무후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철두철미하게 꿰고 있던 존재였다. 절대로 한 사람의 혹리에게 권력을 주지 않고 라이벌을 키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도록 만들었다. 박정희가 김종필이 컸다 싶자 그를 내치고 김형욱을 키우고, 그 뒤로 박종규, 이후락, 김재규, 차지철에 이르기까지 숱한 수하들을 교통정리 없이 늘어놓아 상호견제를 하게 했던 것도 측천무후의 수법에 비하면 어린 아이들 장난에 불과하다. 결국 박정희는 수하들의 분란을 통제하지 못하고 비명에 세상을 떠났으나 측천무후는 천수를 누렸다.

측천무후 치하에서 초반에 위세를 날린 혹리는 주홍이라는 인물이었다. 주홍은 누명 씌우기와 고문으로 자백받기의 달인이었다. 측천무후의 심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그는 거칠 것없는 악랄한 수법으로 죄를 만들어 뒤집어 씌웠다. 사람들은 모두 주홍을 두려워했고 그의 위세가 측천무후에게도 부담이 될 정도의 어느날이었다. 측천무후는 주홍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고 주홍의 부하 관리인 내준신에게 주홍을 처리하라는 임무를 맡긴다. 임무를 부여받은 내준신은 주홍에게 복잡한 사건을 맡게 되어 조언을 청한다며 집으로 초청해 점심을 대접했다.

"형님. 한 놈을 제거하라는 밀명을 받았는데 그놈 성격이 너무 완강해서 제가 아는 방법으로는 자백을 받아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형님께서 좋은 방안이 있다면 이 아우에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세에 취하고 내준신이 대접한 술에 취한 주홍은 호기롭게 웃으며 답한다.

"그까짓 게 뭐 대수라고. 커다란 항아리를 하나 준비해서 그 놈을 처넣고 항아리 아래 장작을 쌓아놓고 불을 붙이게나. 제 놈이 자백 안 하고 배기나."

그러자 내준신은 하인들에게 항아리를 준비하게 하고 그 밑에 장작을 쌓았다. 그리고 주홍에게 말했다.

"실은 폐하께서 형님을 제거하라는 밀명을 제게 내렸습니다. 형님께서 항아리에 좀 들어가야 쓰겄소!"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주홍은 억울하다고 항변을 하려 했지만 곧바로 포기했다. 어차피 이들은 잘잘못을 가리려는 집단이 아니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항변해봐야 쌓이는 장작의 갯수만 늘어날 뿐이다. 본인이 그런 식으로 취조를 해왔으니까 너무나 잘 아는 과정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마찬가지, 공연히 항아리 속에 들어가 타는 고통을 당할 필요는 없다라는 판단을 하게 된 주홍은 내준신이 뒤집어 씌우는 누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곱게(?) 죽음의 길을 택했다. 그날 이후 중국에는 '청군입옹(請君入甕 - 형님이 항아리에 좀 들어가야 쓰겄소!)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 정도의 뉘앙스를 지닌 성어라 한다.

요 며칠 전에 국정원 댓글 사건 방해 혐의로 조사를 받던 어떤 검사가 투신자살을 했다. 이 사건을 두고, 검찰 일각과 조중동은 무리한 검찰의 망신 주기 수사가 문제라는 식의 여론을 조성하려 시도한다. 죽은 이의 삶에 대해 나는 잘 몰라 함부로 말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무슨 망신주기를 당했는지 역시 잘 알지 못한다. 누구 말마따나 적어도 망신주기 수사라 하면 과거 노무현 대통령에게 자행되었던 '논두렁 시계' 보도나 '박연차 대질 심문'같은 수준은 되어야 망신주기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내가 알기로는 본격적인 수사는 시작도 안 했는데 자살을 한 것이라 들었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압박을 가해 원하는 자백을 받아내는 절차를 너무나 잘 아는 나머지, 이제 그 과정을 당하는 대상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공포감에 섣부른 판단을 한 것은 아닐까.

법률 전문가가 대한민국 법 체계에 명시된 다양한 항변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하고 목숨을 끊은 것 자체가 과거의 검찰, 특히 정치 분야에 있어서의 검찰의 관랭이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나는 생각한다.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은 그야말로 누구 말마따나 '시체 팔이' 그만 하고, 우리 사회의 적폐가 어느 정도인지 깨닫기를 바란다. 니들이 준비한 항아리에 니들이 들어가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니들 잘 나갈 때 남들 항아리에 처넣는 짓거리는 하지 말았어야지.

by udis | 2017/11/09 20:31 | 담벼락에 욕하기 | 트랙백(1)

트랙백 주소 : http://udis.egloos.com/tb/356953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Tracked from 거침없는 무애자 at 2017/11/09 21:46

제목 : 저~~ 우도인님 안녕하셨어요.
측처무후는 당고종의 궁녀가 아닌 당태종 이세민의 정5품 후궁으로 입궁했어요. 아부지가 개국공신이거든요. 당태종은 무미랑이라는 닉을 지어줄정도로 이뻐했어요....more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